부정적으로 생각하기
국어과 염재명
"우리의 성향을 이런 처지에다 비유해 보게나. 이를테면, 지하의 동굴 모양을 한 거처에서, 즉 불빛 쪽으로 향해서 길게 난 입구를 전체 동굴의 너비만큼이나 넓게 가진 그런 동굴에서 어릴 적부터 사지와 목을 결박당한 상태로 있는 사람들을 상상해 보게. 그래서 이들은 이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앞만 보도록 되어 있고, 포박 때문에 머리를 돌릴 수도 없다네. 이들의 뒤쪽에서는 위쪽으로 멀리에서 불빛이 타오르고 있네. 또한 이 불과 죄수들 사이에는 위쪽으로 길이 하나 나 있는데, 이 길을 따라 담이 세워져 있는 걸 상상해 보게. 흡사 인형극을 공연하는 사람들의 경우에 사람들 앞에 야트막한 휘장(칸막이)이 쳐져 있어서, 이 휘장 위로 인형들을 보여 주듯 말일세."
-국가. 플라톤
학교에서부터
담임선생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신다고 하셨다. 내 이름은 모르셨지만.
내가 기억나는, 교과지식을 제외하고, 학교에서 제일 먼저 배운 것은 성적이라는 기준으로 나와 남을 비교하는 법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교실의 자리는 성적순으로 배분되었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지나오며 성적이 학급임원이 되기 위한 하나의 필요조건이 되어버렸을 때, 이미 그것은 하나의 권력이 되어있었다. 성적이 높을 때와 낮을 때, 나를 보는 친구들의 시선과 나를 대하는 선생님의 태도가 달랐고, 나를 아는 사람들의 태도 역시 달랐다. 성적이 좋으면, 성실하고 착한학생. 성적이 낮으면, 불성실한 그저 그런 별 볼일 없는 인간. 논리는 단순하고 매끈하게 요약되는 듯 했고, 누구도 거리낌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나라고 다를 건 없다. 나 역시 그 숫자에 우쭐대고 웃었으며 또 울었다, 몇 년동안.
결국 선생님들 말대로 됐다. 성실하고 착한 학생은 대학에 들어가고, 불성실한 별 볼일 없는 인간은, 대학에나 들어가고.
파블로프 Pavlov
고등학교 교실은 항상 눅눅했다. 자율학습을 하다 주위를 둘러보면, 에어콘 바람을 타고 먼지들이 꽃씨처럼 날아다녔다. 고등학교 수학시간은 항상 오금이 저렸다. 수학선생님은 얇지만 아픈 매를 들고 다니셨고, 나는 sin30'의 값을 몰라서 그 매로 두들겨 맞았다. 선생님은 “너는 언제 인간 될래” 라며 나를 때리셨고, 나는 맞으면서 삼각함수 특수각과 인간성의 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그 뒤로 삼각함수부터 열심히 공부하여 성적이 많이 올랐고, 나는 착한 학생이 되었다. 선생님은 인간 하나 만들었다며 뿌듯해하셨다.
입시와 경쟁
경쟁이 이 나라를 얼마나 발전시켰는지는 모르겠다. 교육에 경쟁이 없다면 이 나라의 발전은 누구 시키냐고 물을 것이다. 어쨌든, 그 경쟁의 과정 속에서의 개인의 아픔과 구조적 불합리는 깨끗하게 잊혀진다. 사람은 어쩔 수 없는 필연 앞에서 놀라지도 않고 분노하지도 않는다. 플라톤이 말했듯 모든 탐구의 시작은 놀라움 인데, 이 땅에서의 입시와 경쟁은 필연이다. 어쩔 수 없다. 아무도 분노하지도, 탐구하지도 않는다.
장래희망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어른들은 항상 물었다. “넌 앞으로 뭘 하고 싶니?” 답이 나오지 않는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정규적인 교육과정을 밟아 왔으면 답이 나오지 않아야 정상이다. 사회 방정식을 쓸 수 밖에. 그냥 사회가 가르쳐 준대로 희망 연봉, 사회적 지위, 고용 안정의 정도, 그 다음 내가 맞을 수 있는 수능점수를 대입하면 장래희망이 도출된다. 그 다음 과정은 이 장래희망에 대한 스스로의 당위성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마음으로 가는 혈관 깊숙히 주사하면, 입시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고, 왠지 지금 하고 있는 입시 노동이 나의 자유의지에 의한 행동이라고 생각 할 수 있다. 고민은 하지 않아야 한다. 고민해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기때문이다.
선택과 집중
이제 대학에 선택당할 차례다. 12월이 되면 수능 성적표가 나오는데 이 것은 내가 누군지를 알려준다. 줄세우기에서 어느 지점에 있는가를 알게 해주는 나의 성적을 보고 대학과 학과가 나를 선택 해준다. 내가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선택당한 것이다. 세익스피어나 밀턴, 두보와 이백이 없이 영문과와 중문과도 가능하다. ‘적성’이라는 스트레스를 이기기 위해서는 스스로 선택한 결정이라고 수백 번 다짐 할 수 밖에 없다.
I Shop, Therfore I am.
직장에서 얻은 돈으로 소비를 한다. 항상 주체적인 소비와 개성적
인 스타일은 내가 만들 었다고 생각하지만, 잡지와 티비를 켜면 나와 같은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항상 있다. 100명넘게. 차고 넘친다. 같은 옷에 비슷한 신발에 비슷한 머리스타일. 자본과 미디어가 가르쳐 준대로 입고 생각한다.
뭐가 누구냐?
나이를 먹어갈 수록 ‘물질적 가치’를 ‘인간적 가치’로 치환한다. 이 것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이 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성을 만날 땐 오른 쪽 어깨에 들려있는 가방을 보고, 왼쪽 팔목에 걸쳐진 시계 브랜드를 보고, 타고 온 차를 보고, 사는 동네와 아파트를 보고, 직업을 보고, 연봉을 계산해보고.
From the cradle to the grave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을 한 이후에도 비교하고, 또 비교당하며 살아가는 것은 반복이다. 학벌을 비교하고, 외모를 비교하고, 집의 평수를 비교하고, 차를 비교하고, 아이의 성적을 비교하고, 집안을 비교하고. 문제는 그런 식의 쉼 없는 계산과 키 재기, 사칙연산과 다름없는 간단하고 매끈한 공식에 의해 ‘모범적인 삶’ 이라는 정답이 도출된다는 점이다. 도출되고, 누구나 그 답을 향해 달려간다. 지금껏 학교에서 성적을 기준으로 끊임없이 내 삶의 가능성과 인간성을 평가당한 것과 마찬가지로.
제기랄,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야할까. 불안한 물음은 끝이 없는데, 간결한 답은 보이지 않는다.
Ella Wheeler Wilcox. 1883
웃어라,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만 울게 되리라,
기뻐하라, 사람들이 너를 찾으리라
슬퍼하라, 그들은 너를 떠날 것이다.
사람들은 너의 즐거움을 원하지만
너의 고통은 필요로 하지 않는다.
즐거워하라, 그러면 친구들이 늘어날 것이다.
슬퍼하라, 그러면 그들을 다 잃고 말 것이다.
축제를 열라, 그럼 너의 집은 사람들로 넘쳐나리라
굶주리라, 세상이 너를 외면할 것이다.
2008.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