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을 만났나요?"
미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멋진 작업이었어요. 그렇지만 그 사람이 내게 구원일 수는 없었어요."
"아무도 다른 누구에게 구원일 수는 없어요."
미미는 욕조로 들어가기 전 레너드 코헨의 <Everybody knows>를 틀어놓고
오랫동안 춤을 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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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보는 사람들 모두 일생에 한 번쯤은 유디트와 미미처럼
마로니에공원이나 한적한 길모퉁이에서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아무 예고 없이 다가가 물어볼 것이다.
멀리 왔는데도 아무것도 변한 게 없지 않느냐고. 또는, 휴식을 원하지 않느냐고.
그때 내 손을 잡고 따라오라. 그럴 자신이 없는 자들은 절대 뒤돌아보지 말 일이다.
고통스럽고 무료하더라도 그대들 갈 길을 가라.
나는 너무 많은 의뢰인을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는 내가 쉬고 싶어진다.
내 거실 가득히 피어있는 조화 무더기들처럼 내 인생은 언제나 변함없고 한없이 무료하다.
이제 이 소설을 부치고 나면 나도 이 바빌로니아를 떠날것이다.
비엔나 여행에서처럼 그곳에도 미미나 유디트 같은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왜 멀리 떠나가도 변하는게 없을까. 인생이란.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김영하 p132, p134